최초의 전기보다 중요한 것은 두 번째 주문이다
최근 한 핵융합 스타트업의 발표자료에서 핵분열과 핵융합의 개발 속도를 비교한 표를 보았다.1942년 12월 시카고 대학의 엔리코 페르미 연구팀은 최초의 제어된 핵분열 연쇄반응에 성공했다. 15년 뒤인 1957년에는 미국 최초의 본격적인 상업 규모 원자력발전소인 Shippingport가 약 60 MW의 전력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기초과학이 불과 15년 만에 발전산업으로 변한 것처럼 보인다. 국제 핵융합 실험로가 국제협정 체결 후 20년 가까이 아직 건설 중이라는 사실과 비교하면 놀라운 속도다. 그러나 두 날짜만 연결하면 그 사이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이 사라진다. 1942년의 사건은 과학적 원리의 증명이었고, 1957년의 발전소는 완성된 민간 상품이라기보다 정부가 위험을 부담한 실증사업이었다. 핵융합 연구/개발 진척사항을 보면 15년은 짧아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 속은 비어 있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그 사이 가압 경수로뿐만 아니라, 흑연로, 중수로, 비등경수로, 액체 금속 혹은 용융염 고속로와 같은 실험로가 잇달아 지어지고, 실험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었다. 따라서 이 글에서 묻고자 하는 것은 최초의 핵융합 전기가 언제 나오느냐가 아니다. 그 첫 발전소에서 드러난 문제를 고친 두 번째 발전소를 누군가 다시 주문할 수 있느냐이다.
핵분열 역사에서 산업의 주류가 된 것은, 우리가 알고 있다시피 가압경수로였다. 미 해군과 산업체 (Westinghouse)는 아이다호 사막에 실물 크기의 육상 원형 동력기관 S1W를 건설했다. S1W는 1953년 임계에 도달한 뒤, 잠수함이 미국 동해안에서 아일랜드까지 잠항하는 상황을 가정해 96시간 동안 연속 전 출력으로 운전됐다. 이 실험은 단지 노심에 “불”을 붙여 본 실험만이 아니었다. 원자로와 냉각계통, 증기발생기, 펌프, 터빈과 제어계통을 실제 잠수함 동력기관처럼 함께 돌렸다. 운전원도 그곳에서 훈련받았다. S1W에서 검증된 가압경수로 추진체계와 운전경험은 Nautilus에 탑재된 S2W로 이어졌다. 이 계보는 이후 미국·프랑스·한국 원전의 주류로 자리 잡았다. 전승된 것은 원자로 물리만이 아니었다. 압력용기와 증기발생기의 제조기술, 품질보증, 공급망, 운전규율과 규제경험이 함께 전승됐다. 이 분야 한국의 경쟁력도 수십 년 동안 반복한 건설과 운전에서 나왔다.
다른 핵분열 발전 방식의 운명은 달랐다. 비등경수로는 국립연구소의 실험과 민간의 초기 발전소를 거쳐 또 하나의 산업이 됐다. 1951년 세계 최초로 유용한 원자력 전기를 만든 고속증식로는 나트륨 취급, 연료주기, 비용과 반복 주문의 부재를 넘지 못했다. X-10에서 Hanford로 이어진 미국의 흑연감속 생산로 계보는 대형 원자로의 반복 건설에는 성공했지만, 플루토늄 생산이라는 국가적 임무가 축소되면서 민수 발전의 주류 계보로 이어지지 못했다. 즉, 물리적 선두가 산업적 승리를 보장하지는 않았다. 고객과 임무, 반복 건설이 있어야 기술의 계보가 이어졌다.
그렇다고 다른 원자로들이 가압경수로와 무관했던 것은 아니다. 흑연로에서 발견된 제논의 시간지연 효과는 열중성자로의 출력운전과 재기동을 계산하는 지식이 됐다. 비등경수로의 실험은 냉각수가 끓을 때 출력과 냉각이 어떻게 변하는지 보여줬다. 고속로의 연료 변형과 냉각유로 차단 경험은 반응도 피드백, 연료 손상과 사고 후 검사의 중요성을 드러냈다. 다시 말해, 이들은 가압경수로의 직계 조상은 아니었다. 그러나 계측, 재료시험, 열수력, 사고해석과 규제의 언어는 노형의 경계를 넘어 이동했다. 여러 노형을 병렬로 건설한 공공 연구개발 체계는 승자를 고르는 경주이면서, 어느 설계가 살아남더라도 사용할 공통 지식을 생산하는 학습장치였다.
그 학습은 실물 원자로가 예상 밖의 행동을 할 때 일어났다. 1944년 세계 최초의 대형 생산로인 B Reactor가 출력을 올린 지 몇 시간 뒤, 제어봉을 계속 빼도 출력이 떨어지더니 꺼졌다. 약 하루가 지나면 살아났다가 다시 꺼지는 현상이 반복됐다. 원인은 중성자를 매우 강하게 흡수하는 핵분열 생성물 제논-135였다. 저출력·단시간 실험에서는 대형 생산로를 정지시킬 정도로 드러나지 않았던 물리였다. 물론, 연구진은 바로 다음 날 원인을 찾아냈다. 그러나 원자로를 실제로 살린 것은 설계진이 불확실성에 대비해 마련해 둔 여분의 연료채널이었다. 더 많은 연료를 넣어 제논의 흡수를 이길 수 있었다. 이 현상을 반추하면, 새로운 물리를 찾아낸 것은 과학의 승리였다. 알지 못하는 현상을 견딜 여유를 남긴 것은 공학의 승리였다. 예상 밖의 일은 물리에서만 나오지 않았다. EBR-I에서는 불안정성을 조사하던 시험 중 연료봉의 열적 변형과 반응도 피드백이 결합해 부분 노심용융이 일어났다. Fermi-1에서는 안전을 위해 설치한 부품이 떨어져 냉각재 입구를 막았다. Three Mile Island에서는 고장 난 밸브, 실제 상태를 보여주지 못한 표시등과 운전자의 판단이 결합했다.
이러한 일련의 발전 과정을 보니, 핵분열은 물리·공학·운영의 문제를 모두 해결한 뒤 상업화된 것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실물 원자로를 운전하며 문제점을 발견하고, 그 실패를 다음 설계와 절차로 넘겼다.
이제 핵융합으로 돌아가 보자. 여러 민간 핵융합기업은 비교적 작은 장치에서 높은 에너지 이득과 플라즈마 제어를 입증한 뒤, 전기를 생산하는 파일럿 발전소로 곧바로 넘어가는 압축된 개발경로를 제시한다. 합리적인 전략이다. 첫 단계에서, 고이득 실증 장치는 주로 핵융합 코어를 시험한다. 그러나, 발전소에는 여기에 14 MeV 중성자를 견디는 재료와 차폐, 열·입자 배출, 삼중수소 증식·추출 및 재고관리, 블랭킷, 자석의 장기 보호, 원격정비와 전력변환이 더해져야 한다. 플라즈마 물리의 열쇠 하나가 발전소 전체의 열쇠꾸러미는 아니다. 예를 들어, S1W는 핵분열 반응만 확인한 장치가 아니라 실제 동력계통 전체를 육상에서 통합 운전한 원형기관이었다. 반면 오늘날의 고이득 핵융합 실증장치는 발전소의 연료주기·블랭킷·열회수·재료수명·정비를 함께 검증하지 않는다. 따라서 두 번째 단계인, 후속 파일럿 발전소에는 육상 원형 기관과 최초 실전기의 역할이 겹쳐 있다.
이러한 전략이 틀렸다는 뜻은 아니다. 그 사이에 재료 조사시설, 중성자원, 블랭킷·연료주기 시험설비와 열배출 시험대가 충분히 갖춰지면, 이름은 두 단계여도 실제 학습은 여러 단계다. 그런 중간 검증이 없다면 단계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마지막 발전소 안으로 숨은 것이다.
최초의 핵융합 발전소에서는 무엇이 드러날까. 연소 플라즈마에서는 자기유지적 알파가열이 난류·MHD 안정성·빠른 입자 손실과 상호작용하고, 생성된 헬륨재를 지속해서 배출해야 한다. 중성자는 재료를 손상시키고 삼중수소는 벽과 처리계통에 포획된다. 디버터를 보호하는 불순물이 플라즈마 성능을 떨어뜨릴 수도 있다. 현재까지, 개별 현상은 연구되고 있지만 이들이 발전소 규모에서 장시간 함께 작동한 경험은 없다.
핵융합의 ‘제논 효과’는 새로운 입자 하나가 아니라 물리·재료·연료주기·제어가 만나는 경계에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물론 핵융합에는 핵분열 연쇄반응에 의한 출력폭주와 같은 사고경로는 없다. 그러나 삼중수소, 냉각재의 화학에너지, 초전도자석의 저장에너지와 방사화 구조물까지 위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상용화를 가장 먼저 좌절시킬 문제는 대형 사고보다 낮은 가동률일 가능성이 크다. 플라즈마 유지뿐만 아니라, 그 목표 성능을 달성하고 발전기가 전기를 생산하더라도, 부품이 예상보다 빨리 손상되고 석 달로 계획한 원격 교체에 1년이 걸릴 수 있다. 반응은 성공했지만 발전소가 반복해서 운전되지 않는다. 여기서 B Reactor의 교훈이 다시 등장한다. 제논-135는 발견된 뒤 계산 가능한 현상이 되었다. 그러나 최초의 위기를 넘긴 것은 사후 계산만이 아니라 미리 만들어 둔 설계 여유였다.핵융합 발전소에도 그런 여유를 예정하고 디자인 마진을 어느 정도로 둘 수 있을까? 자기장을 낮추거나 불순물 복사를 늘려 디버터 열부하를 낮추면서도, 코어 희석과 성능저하를 감수하고 충분한 핵융합 출력과 안정적인 detachment를 유지할 수 있는가? ? 블랭킷과 차폐를 두껍게 하거나 삼중수소 증식률이 예상보다 낮아도 발전소가 성립할까? 부품 수명이 절반으로 줄고 정비가 두 배 오래 걸려도 경제성이 유지되는가?
현재 핵융합 발전의 상용화 목표는, 핵융합 방식, 플라즈마 시나리오, 재료, 연료 주기, 블랑켓, 발전소 통합 운영 등에 관한 디자인, qualification, integration을 동시에 병렬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보통이고, 여러 민간기업은 2030년대 중반까지 파일럿 규모의 전력 생산을 실현한다는 공격적인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다만 이러한 로드맵은 자금과 인력을 움직이기 위한 목표표이지, 실제 운전에서 어떤 문제가 나타나고 해결에 얼마나 걸릴지를 보장하는 예측은 아니라는 것을 마음에 두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로 정확히 대응하는 장치는 아니지만, 핵분열의 역사에 비추어 보면 핵융합에는 적어도 세 종류의 이정표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핵융합 플라즈마를 만드는 물리적 실현 (1942년-시카고파일1), 중성자와 열을 견디며 정비 후 다시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공학적 실현 (1957년 - shippingport), 그리고 첫 발전소의 성능·고장·가동률·비용을 확인한 고객이 다음 발전소를 주문하는 산업적 실현 (정부의 직접적인 발전소 건설비 지원 없이 민간 전력회사가 주문한 Dresden-1 (1960년)과 그 후속 주문) 이다. 핵융합 첫 전기는 2030년대에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핵분열 역사에서 특이하게도 맨 처음 전기를 생산한 원자로형은 1951년 액체금속 증식로 EBR-1으로 실험을 진행하면서 먼저 네 개의 전구를 켰고, 다음 날에는 건물 전체에 필요한 전력을 공급했다. 핵융합 연구에서도, 최초 발전소가 전기를 생산한다면, 상용화가 끝난 순간이 아니라 지금까지 몰랐던 문제를 발전소 규모에서 발견하기 시작한 순간일 가능성이 높다.
핵분열의 역사가 주는 교훈은 ‘정부가 하라’도 ‘민간에 맡기라’도 아니라, 발전소 규모에서만 드러나는 실패를 발견할 장치, 그 실패를 견딜 설계 여유, 그리고 지식을 다음 장치로 넘길 연속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두 번째 주문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더 높은 순간 핵융합 출력만이 아니다. 예측 가능한 건설비와 정비기간, 연료공급, 규제절차와 가동률에 관한 신뢰할 만한 운전자료다. 첫 발전소의 성공 기준에는 순간 출력뿐 아니라 가동률, 부품수명, 정비시간과 후속 설계에 전달할 운전자료가 포함되어야 한다. 정부의 역할은 특정 설계를 미리 승자로 정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설계가 공통으로 필요로 하는 검증시설과 실패의 지식을 다음 호기로 전달할 제도적 연속성을 만드는 데 있다. 상업화의 첫날은 핵융합 전력이 전력망에 들어간 첫날이 아니라, 첫 발전소의 문제와 비용을 확인한 고객이 두 번째 발전소의 구매계약서에 서명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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